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게임사들이 M&A(인수합병)를 통해 '한 방'을 노리고 있다. 게임 외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이 가능한 슈퍼 IP(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만큼, 신규 IP 발굴을 통해 실적 부진을 극복하고자 하는 생존 전략이 강조되고 있다.

크래프톤

출처: 크래프톤
출처: 크래프톤

크래프톤이 기업가치 제고를 목표로 공격적인 M&A 활동을 예고했다.

배동근 크래프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26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M&A를 통해 기업 외연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는 "2023년 전 세계 게임사 350곳을 인수 대상으로 검토하며 논의를 진행했고 2024년에는 이를 기반으로 인수합병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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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톤은 현재 배틀로얄 생존게임 '다크앤다커 모바일',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인조이' 출시를 앞두고 있으며 '딩컴모바일', '프로젝트 블랙버짓', '서브노티카2' 등 신규 타이틀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에 더해 적극적인 M&A로 우수한 게임 IP를 확보함으로써 기업 규모를 더욱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공격적 투자에는 IPO(기업공개)를 통해 확보한 현금이 기반이 됐다. 크래프톤의 2023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해 연결기준 1조 9,106억 원의 매출과 7,68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3.1%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2.2% 늘었다.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7,210억 원으로, 유동성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 2조 3,404억 원을 포함하면 크래프톤의 현금화 가능 자산은 약 3조 614억 원까지 불어나게 된다. 이를 기반으로 회사 측이 예상한 올해 투자 집행 금액은 약 7,600억 원 규모다.

앞서 크래프톤은 자체 개발한 'PUBG: 배틀그라운드'의 흥행 이후 해당 시리즈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이에 회사는 스케일업 더 크리에이티브(Scale-up the Creative) 전략을 택했다. 스케일업 더 크리에이티브는 개발 스튜디오에서부터 IP를 확보한 뒤 회사 운영 노하우를 더해 IP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같은 맥락으로, 제작 및 퍼블리싱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의 IP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컨드 파티(Second Party) 퍼블리싱을 확대, 지난해 10개 이상의 프로젝트에 투자를 단행했다. 세컨드 파티 퍼블리싱은 게임의 배급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닌, 소수지분 투자가 병행되는 방식을 뜻한다. 이는 크래프톤이 게임 IP 발굴을 위해 게임사를 인수해왔던 것과 일맥상통한 행보로, 올해 역시 스케일업이 가능한 IP 발굴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는 지난 8일 열린 2023년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스케일업 더 크리에이티브는 단순히 퍼블리싱 역량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IP 발굴부터 제품의 시장화, 개선을 포함한 관점의 변화"라며 "한 번 획득한 IP는 지속적인 서비스 개선과 콘텐츠 업데이트를 통해 장기간 성장하는 서비스로 만들어내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속적으로 역량 있는 개발사를 발굴하고, 지분투자 또는 인수 전략을 통해 경쟁력 높은 게임을 개발 및 퍼블리싱 할 계획"이라며 "현재 10개 이상 게임사에 투자를 진행했으며 향후 세컨드 파티 퍼블리싱 투자로 IP 발굴의 속도를 높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 공동대표 김진택(좌), 박병무(우) (출처: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 공동대표 김진택(좌), 박병무(우) (출처: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 또한 핵심 IP이자 캐시카우인 '리니지' 이외의 새로운 매출원을 확보하기 위해 M&A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0일 엔씨소프트는 회사를 둘러싼 여러 현안들과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기 위해 미디어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박병무 엔씨소프트 대표 내정자는 "관심 1순위는 게임사에 대한 투자와 인수합병이다. 엔씨소프트의 게임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시장 확장에 기여할 수 있는 국내외 기업이 후보군이며, 현재 적극 검토하고 있다"라며 IP 확보 및 신성장 동력을 위한 M&A를 강조했다.

엔씨소프트의 주력 게임으로는 리니지 시리즈(리니지M, 리니지2M, 리니지W)와 '블레이드&소울', '아이온', '길드워' 등이 있으며 2023년 연결기준 매출액은 1조 7,798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 중 약 35%는 일본, 대만, 미국 등 해외 60여 개국으로부터 발생했다.

현재 회사는 글로벌 매출 확대를 목표로 글로벌라이제이션, 경영효율화, 데이터 작업 프로세스 완비, M&A 4가지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주목받고 있는 M&A 전략에 대해 박병무 내정자는 "단순 투자가 아닌 인수합병은 큰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며 "적절한 회사가 나오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속하게 실행할 수 있도록 내부에 TF(Task Force)를 구성해 잠재 회사를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실행 시기에 대해서는 "성공적인 인수합병이 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분석 등 상당한 인내력이 필요하다"라고 함구하며 "부족한 장르의 IP를 확보하기 위한 국내외 게임사 투자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한다.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사업적 시너지, 미래 성장 동력, 재무적 도움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 부합하는 M&A 역시 치열하게 검토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 일환으로 엔씨소프트는 현재 MMO 슈팅, MMO 샌드박스, MMO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장르 게임 개발에 매진하고 있으며 글로벌 사업 협력을 추진 중인 소니를 비롯해 빅테크 기업과 새로운 방식의 협력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회사는 AI(인공지능) 기술을 게임 제작에 적극 도입,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서비스 '바르코(VARCO)'를 사내 오픈해 효율성 및 생산성 제고를 위한 시범운영에 돌입했다. 이를 고려했을 때, 향후 엔씨소프트의 M&A 대상으로는 AI 관련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기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진택 대표는 "AI 기술을 게임 제작에 적극 도입해 비용 및 제작 기간 효율화와 창작 집중성을 만들어낼 것"이라며 "이를 위해 창의력이 뛰어난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고 관련 분야에 자원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엔씨소프트는 공동대표 체제 출범으로 김택진 대표가 대표이사(CEO)이자 최고창의력책임자(CCO)로서 핵심인 게임 개발과 사업에 매진한다. 박병무 내정자는 오늘(28일) 열리는 주주총회를 통해 정식 취임할 예정이며, 경영 시스템과 내실을 다지는 동시에 미래 신성장 동력 발굴에 주력할 계획이다.

위메이드

출처: 위메이드
출처: 위메이드

위메이드는 '나이트 크로우' 개발사인 매드엔진에 대해 연내 M&A 가능성을 시사했다.

나이트 크로우는 지난해 4월 출시된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게임으로, 위메이드의 2023년 성공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해당 게임의 개발사인 메드엔진과 그 수익을 분배하고 있는바, 흥행의 과실을 온전히 누리고 있지는 않다. 이에 나이트 크로우가 흥행할수록 매드엔진에 지급하는 수수료가 증가하자, 자회사로 편입시켜 비용 부담을 낮추려는 의도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지난달 열린 2023년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매드엔진이 받아 가는 지급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도록 연결 내부 거래 방식으로 구조를 변경할 예정"이라며 "지급수수료 항목이 사라지면서 회사 수익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위메이드가 매드엔진에게 지급한 수수료는 약 3,070억 원 규모로, 전년 동기(1,810억 원) 대비 70% 가까이 급증했다. 통상 퍼블리셔(publisher, 배급사)는 매출의 10~30%를 개발사에 로열티로 지급한다. 그동안 '미르4', '미르M'은 위메이드에서 자체 개발한 게임이다 보니 마켓수수료 외 지급하는 수수료가 거의 없었지만, 나이트 크로우가 흥행하면서 수수료에 대한 부담이 가중됐다.

그 결과 위메이드는 저조한 실적을 피할 수 없었다. 회사는 지난해 연결기준 6,052억 원의 매출액과 1,10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나이트 크로우의 국내 흥행과 미르 시리즈의 로열티 수수료가 반영되면서 매출액은 전년 대비 31% 증가했지만, 지급수수료를 포함한 영업비용의 증가 및 신작 개발을 위한 투자 확대 등으로 같은 기간 영업손실 또한 큰 폭(255억 원)으로 늘어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위메이드의 매드엔진 인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위메이드 관계자는 "나이트 크로우의 글로벌 출시를 위해 양사가 계속해서 협의하고 있다"라며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현재 위메이드가 보유하고 있는 매드엔진의 지분은 7만 6,018주(40.47%)다. 구체적으로, 이 중 위메이드가 22.73%(4만 2,688주)를, 위메이드의 자회사인 위믹스PTE가 나머지 17.7%(3만 3,330주)를 소유하고 있다. 이에 위메이드가 매드엔진을 자회사로 품기 위해서는 약 10% 지분을 추가 확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컴투스

컴투스 이주환 대표이사 (출처: 컴투스)
컴투스 이주환 대표이사 (출처: 컴투스)

모바일 게임 개발사 명성을 얻은 컴투스 또한 글로벌 시장 공략 및 M&A를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컴투스는 지난해 역대 최대인 7,396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이 중 해외 매출은 전체의 60% 수준인 4,409억 원에 달하며, 특히 북미와 유럽 등 서구권 국가에서 비교적 높은 수준의 매출을 유지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컴투스는 글로벌 퍼블리셔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외부 개발사의 경쟁력 있는 신작을 다수 퍼블리싱 하는 전략으로, 해외 개발사들의 유수 신작들에 대한 판권을 확보함으로써 해외 매출을 극대화하겠다는 의미다.

이주환 컴투스 대표는 지난 1월 열린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올해를 '변화와 도전의 해'로 정의하고 퍼블리싱 신작 3종 '프로스트펑크: 비욘드 더 아이스', 'BTS쿠킹온: 타이니탄 레스토랑', '스타시드: 아스니아 트리거'의 글로벌 출시 계획을 공개했다. 아울러 이미 진출해 있는 해외시장 이외에도 중국, 중동 등 신규 지역에 대한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M&A 활동에도 불씨를 지핀다. 지난 2월 컴투스는 넥슨 신규개발본부장을 지낸 김대훤 전 부사장이 설립한 게임 개발사 '에이버튼'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 차기 MMORPG에 대한 글로벌 퍼블리싱 판권을 확보했다. 한지훈 컴투스 게임사업 부문장은 지난 1월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서 "(경쟁력 있는 스튜디오를 대상으로) 퍼블리싱과 지분투자 모두 열려있는 상황"이라며 "현재 다양한 지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게임사들이 M&A에 목이 마른 이유는 실적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기존 IP로 추가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쉽지 않아진 만큼, 외부로부터 경쟁력 있는 신규 IP를 가져오는 것이 더욱 절실해진 상황이다.

정호윤·김예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게임 시장의 불황은 사람들의 집중력 하락으로 인한 게임 취향 변화,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IP 영향력 약화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판단한다"라며 "이러한 변화는 구조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에 게임업계에서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불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라고 전했다.